1996년경에 받은 말씀 : 요한 텍스트 (소명)
   
  
 
 
 
성체신심의 깊이에 따라 성서해석의 깊이가 달라지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성체신심은 성서의 핵심에 대한 많은 관주 자료를 스스로 쉽게 찾아내게 하기 때문이다. 평소의 깊은 묵상이 성서 안에서 성령님께 이끌리어 행하여진 성체신심만이 그러한 승리를 가져다 준다. 성서와 성령의 안내를 받지 못해서 성체의 기적을 찾아 발버둥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설령 성체 기적을 체험했다고 하여도 그것은 Norma Normata 가 되지 못하며 또한 교리화될 수가 없다. 우리는 오직 성서의 진리만을 믿으며 성서의 안내와 성령의 조명에 따라 더 깊은 진리의 세계를 얻게 된다. 감추었던 만나의 세계는 진리의 잣대에 대한 심각한 투쟁과 믿음의 시련을 통해서만 얻어진다. 체험은 소중한 것이며, 그것은 하나님께서 개인에게 주신 은밀한 축복이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성도들에게 보편적으로 가르쳐질 수는 없다. 오히려 그런 소중한 체험을 받은 그 축복 받은 성도가 그 체험을 바탕으로 성서의 세계로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성서의 진리만을 소리 높여 외쳐야 할 것이다. 온전한 것이 그 개인에게 다가와 어릴 적에 붙잡던 부분적인 것을 버릴 것을 요구한다면 그는 그것을 빨리 버리는 것이 진리의 세계에 다가 가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사실 하나님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우리에게 다가 오신다. 그런 신비의 체험은 성서의 곳곳에서 많이 나타난다. 특히 예수님의 지상 방문 중에도 그런 일들은 많았다. 구약성서와 사도행전에도 많다. 그러한 기적이나 신비의 체험을 묵살하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오히려 성서의 계시에 대한 믿음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사로 깨우쳐 주고, 성서의 온전한 계시를 참 믿음으로 영접하게 해야 한다. 예수님은 기적을 그런 목적으로만 사용하셨고, 기적만 좇아 다니는 무리들, 즉 그리스도를 구하지 아니하고 신령한 세계나 구하는 가라지들을 물리치셨다. 고린도서는 이러한 자들을 사랑을 모르고 그리스도를 모르는 어린 자들로 다루고, 교회의 전면에 나서지 말 것을 명령했다. 그들은 이제부터 온전한 진리의 세계를 성서 안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 게시물은 요한님에 의해 2008-11-04 15:21:53 요한 텍스트 (소명)에서 복사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