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aschal Koinonia and Exodus Dream 1 )


  총정리 : 주님의 '자신을 내어주심'과 우리들의 '주님을 나누어 가짐'


κοινωνία 와 μετέχομεν




τὸ ποτήριον τῆς εὐλογίας ὃ εὐλογοῦμεν,

οὐχὶ κοινωνία ἐστὶν τοῦ αἵματος τοῦ χριστοῦ;

τὸν ἄρτον ὃν κλῶμεν,

οὐχὶ κοινωνία τοῦ σώματος τοῦ χριστοῦ ἐστιν;



ὅτι εἷς ἄρτος,

ἓν σῶμα οἱ πολλοί ἐσμεν,

οἱ γὰρ πάντες ἐκ τοῦ ἑνὸς ἄρτου μετέχομεν.


(고전 10:16-17)


"The cup of blessing which we bless, is it not the communion of the blood of Christ?
The bread which we break, is it not the communion of the body of Christ?
For we being many are one bread, and one body: for we are all partakers of that one bread." (K.J.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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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자료 발췌]



"우리가 축복하는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



우리가 떼는 그 떡이 왜 우리의 참예냐? 그 떡은 그리스도의 '몸 내어주심'이며 그리스도의 '몸의 교제'다.

우리가 축복하는 그 잔이 왜 우리의 참예냐? 그 잔은 그리스도의 '피 내어주심'이며 그리스도의 '피의 교제'다

우리의 참예는 '먹고 마심'이며 그 떡과 잔은 그리스도의 '내어주심'이다. (엡 5:25)



그러므로 떡과 잔에 대한 바울의 말은 이렇게 해석되어야 한다.

"우리가 축복하는 그 잔은 그리스도의 피 내어주심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그 떡은 그리스도의 몸 내어주심이 아니냐? 주님의 피와 몸의 교제가 아니냐? 주님의 피와 몸이 아니냐?"


그러므로 그 떡과 잔을 모독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피와 몸의 사랑을 모독하는 것이며, 분별없이 그 떡과 잔을 먹고 나누는 것은 주의 피와 몸을 범하는 죄악이다.


('떡과 잔'이라는 명사와 '먹다와 마시다'라는 동사를 구별해야 한다)



"우리가 축복하는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 (한글 개역)

"우리가 축복하는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의 교제가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의 교제가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떡(주의 몸)에 참예함이라." (이요한의 수정)

"The cup of blessing which we bless, is it not the communion of the blood of Christ?
The bread which we break, is it not the communion of the body of Christ?
For we being many are one bread, and one body: for we are all partakers of that one bread." (K.J.V.)

"Der gesegnete Kelch, welchen wir segnen, ist der nicht die Gemeinschaft des Blutes Christi?
Das Brot, das wir brechen, ist das nicht die Gemeinschaft des Leibes Christi?
Denn ein Brot ist's, so sind wir viele ein Leib, dieweil wir alle eines Brotes teilhaftig sind." (루터 성경)

"우리가 감사를 드리면서 그 축복의 잔을 마시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를 나누어 마시는 것이 아니겠읍니까?
또 우리가 그 빵을 떼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나누어 먹는 것이 아니겠읍니까?
빵은 하나이고 우리 모두가 그 한 덩어리의 빵을 나누어 먹는 사람들이니 비록 우리가 여럿이지만 모두 한 몸인 것입니다" (공동번역)




Gemeinschaft

공동사회와 이익사회 (共同社會 , 利益社會 〔독〕 Gemeinschaft, Gesellschaft)

[ 요약 ]

독일의 사회학자 F. 퇴니에스가 분류한 사회형(社會形)의 범주개념.
공동사회(Gemeinschaft)는 애정·우정 등 본질의지에 의한 인격적·영속적·자연적·정서적 집단으로서 가족·촌락·이웃·동료집단 등이 있다.
이익사회(Gesellschaft)는 생활상의 특수목적과 선택의지에 의한 의도적·계약적·공식적 집단으로서 회사·국가·정당 등을 들 수 있다.


[ 설명 ]

독일의 사회학자 F. 퇴니에스가 분류한 사회형(社會形)의 범주개념.

공동사회는 애정·우정 등 본질의지에 의한 인격적·영속적·자연적·정서적 집단으로서 가족·촌락·이웃·동료집단 등이 있다. 이익사회는 생활상의 특수목적과 선택의지에 의한 의도적·계약적·공식적 집단으로서 회사·국가·정당 등을 들 수 있다.

공동사회에서는 단순한 상호접촉에서 점차 감정적 융화가 생기고, 이해관계보다도 의지적 협동의 사실이 나타난다. 감정적 융화를 <게마인샤프트(Gemeinschaft)>라 한다. <게마인(gemein)>에는 집단구성원이 일정하고 그 성원 사이에 교체가 없다는 의미가 있는데, 이 말을 한층 엄격하게 사용하면 집단 내부와 집단 외부와의 사이에 접촉·교섭이 차단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보통은 성원의 가입 및 탈퇴가 자유롭지 못하고 집단 내부에 대한 외부의 참여가 배척되거나 제한되는 경우의 사회집단을 외부에 대해서 내부적으로 <공동체화>되었다고 한다. 즉 공동사회는 접촉이 감정상태에 근거하고 있으므로 심적인 단결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단체는 그 정도가 깊은 가족으로부터 정도가 얕은 국제사회 또는 동업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공속감정(公屬感情)을 이루어 자아의 의식에서 <우리>의 의식으로 지향한다. 공동사회는 종속단결·생활단결·공명단결(共嗚團結)로 분류된다. 종속단결은 선천적이며 생물적인 단결로 성적단결·동혈단결(同血團結)을 말한다. 생활단결은 후천적인 사회적 단결, 즉 외부인의 단결로 친화계급·직업단체를 말하며, 공명단결은 내면적·심적 단결로서 종교·학교·예술단체 등을 말한다.

이익사회는 이익관념을 중심으로해서 각 개인의 의지가 협동하는 상태의 사회이다. 집단성원이 일정하지 않고 그 성원간에 교체가 있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으나 보통 집단 내부와 외부와의 사이에 접촉·교섭이 아무런 제한없이 자유로움을 의미한다. 즉 집단 내부에 대한 외부의 참여가 사실상 참여할 능력만 있다면 자유롭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경우에 그 사회집단은 외부에 대해서 <열려 있다(gesellen)>라고 한다. 그러므로 <게젤샤프트(Gesellschaft)>는 이성적·자각적으로 상대를 선택하여 고의적·합리적인 결합을 하는 상태를 말하며, 절대로 자연발생의 의지로 결합되는 것은 아니다. 이익사회에는 영리단결·향락단결·공공단결이 있다. 영리단결은 물질적이고 경제적인 단결로서 주식회사가 있으며, 향락단결은 오락적인 목적을 하는 것으로서 각종 오락클럽이 여기에 속한다. 공공단결은 공공적 이익을 실현하려는 단체, 즉 자선단체와 박애단체 등이 있다.



die Gemeinschaft des Blutes Christi

die Gemeinschaft des Leibes Chris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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κοινωνία 와 μετέχομεν


내어주심과 함께 나누어 가짐 (이 두개의 동사는 주어가 각각 다르다)


παριστημι




τὸ ποτήριον τῆς εὐλογίας ὃ εὐλογοῦμεν,

οὐχὶ κοινωνία ἐστὶν τοῦ αἵματος τοῦ χριστοῦ;

τὸν ἄρτον ὃν κλῶμεν,

οὐχὶ κοινωνία τοῦ σώματος τοῦ χριστοῦ ἐστιν;



ὅτι εἷς ἄρτος,

ἓν σῶμα οἱ πολλοί ἐσμεν,

οἱ γὰρ πάντες ἐκ τοῦ ἑνὸς ἄρτου μετέχομεν.


(고전 10:16-17)



ἡ χάρις τοῦ κυρίου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καὶ ἡ ἀγάπη τοῦ θεοῦ

καὶ ἡ κοινωνία τοῦ ἁγίου πνεύματος μετὰ πάντων ὑμῶν.

(고후 13:13)





κοινωνία (고전 10:16)

κοινωνοὶ , κοινωνός (고전 10:18)

κοινωνία 와 κοινωνός(κοινωνοὶ) 차이는?





헬라어 원문, KJV, 한글개역
16
τὸ ποτήριον τῆς εὐλογίας ὃ εὐλογοῦμεν, οὐχὶ κοινωνία ἐστὶν τοῦ αἵματος τοῦ Χριστοῦ; τὸν ἄρτον ὃν κλῶμεν, οὐχὶ κοινωνία τοῦ σώματος τοῦ Χριστοῦ ἐστιν;
The cup of blessing which we bless, is it not the communion of the blood of Christ? The bread which we break, is it not the communion of the body of Christ?
우리가 축복하는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17
ὅτι εἷς ἄρτος, ἓν σῶμα οἱ πολλοί ἐσμεν, οἱ γὰρ πάντες ἐκ τοῦ ἑνὸς ἄρτου μετέχομεν.
For we being many are one bread, and one body: for we are all partakers of that one bread.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

18
βλέπετε τὸν Ἰσραὴλ κατὰ σάρκα: οὐχ οἱ ἐσθίοντες τὰς θυσίας κοινωνοὶ τοῦ θυσιαστηρίου εἰσίν;
Behold Israel after the flesh: are not they which eat of the sacrifices partakers of the altar?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예하는 자들이 아니냐

19
τί οὖν φημι; ὅτι εἰδωλόθυτόν τί ἐστιν; ἢ ὅτι εἴδωλόν τί ἐστιν;
What say I then? that the idol is any thing, or that which is offered in sacrifice to idols is any thing?
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뇨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라 하느뇨

20
ἀλλ' ὅτι ἃ θύουσιν, δαιμονίοις καὶ οὐ θεῷ [θύουσιν], οὐ θέλω δὲ ὑμᾶς κοινωνοὺς τῶν δαιμονίων γίνεσθαι.
But I say, that the things which the Gentiles sacrifice, they sacrifice to devils, and not to God: and I would not that ye should have fellowship with devils.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21
οὐ δύνασθε ποτήριον κυρίου πίνειν καὶ ποτήριον δαιμονίων: οὐ δύνασθε τραπέζης κυρίου μετέχειν καὶ τραπέζης δαιμονίων.
Ye cannot drink the cup of the Lord, and the cup of devils: ye cannot be partakers of the Lord's table, and of the table of devils.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

(고전 10:16-21)


16 절에서는 잔과 떡이 코이노니아와 맞물려서 단수가 되고 18절에서는 제물을 먹는 자들이 코이노노이(코이노노스) 맞물려서 복수가 되었다. 16절에서는 코이노니아는 추상명사이고 떡과 잔의 술어이든지 아니면 그리스도의 살과 피의 술어이든지 둘 중의 하나다. 18절에서 코이노노스는 제물을 먹는 자들의 술어다.그리고 제단을 목적어로 취한다. 16절의 코이노니아는 18절의 코이노노스와 어떻게 다른가? 16절의 코이노니아의 목적어가 그리스도의 살과 피리면 주어는 잔과 떡 이전에 한떡을 떼고 한잔을 마시는 자들이다. 잔과 떡은 먹고 마시는 자들과 먹히우시고 마시우시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 사이에 있다. 바로 이 잔과 떡.... 이 잔과 떡은 우리의 참예인가 아니면 그리스도의 교제인가? ....

16절의 코이노니아와 18절의 코이노노스 사이에는 히브리서가 말하는 대변역이 있다. 옛 성막에서 새 성막으로의 대변역인데 이것은 이스라엘에서 살렘으로의 대변역이다. 18절의 코이노노스는 연약한 동사이며 16절에서의 코이노니아는 신령한 동사이다. 18절에서는 주어와 목적이가 분명하다. 주어는 사람이고 목적어는 제단이다. 그리고 여기서는 제물(먹음)과 제단(참예함, 참배함)이 하나가 아니고 분리되어 있다. 16절에서는 주어를 아직 정하지 못했다. 만약에 주어가 먹고 마시는 인간이라면 코이노니아라는 단어의 목적어 영역에 속하는 제물(먹음)과 제단(참예함, 참배함)은 하나이며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러나 18절의 코이노노스와는 달리 이 코이노니아는 그리스도의 성만찬 제정과 십자가 속죄제와 신비스러운 권능의 부활 승천으로 인해 신령한 행위를 의미하는 알 수 없는 동사다. 각각의 단어는 그 어떤 실체들을 맵핑한다. 이 맵핑에 인간의 인식력이 통하지 않는 맵핑이 탄생한 것이 성만찬 제정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이다. 그래서 16절의 코이노니아의 주어는 쉽게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언어 세계에 하나님 나라가 들어오면 언어가 변한다.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하기 힘든 실체들도 있다. 그래서 억지로 혹은 강제로 사용한 단어가 원래의 의미 그대로를 지니고 사용되었다고 말할 수가 없는 경우가 많다.('먹다'와 '마시다'라는 동사들도 그 중의 하나다.)

사도 바울은 16절과 18절에 사용된 코이노니아 계열의 두 단어에 대해서 같은 역할을 부여하여 사용했을까? 유럽의 번역자들이 이 속격을 사용할 때에 그들이야 어차피 언어의 형태가 비슷하니까 독일어나 영어나 기계적인 번역이 가능했을 것이다. (불카타역은 또 이상하게 원문을 나름대로 번역했다. 하나의 코이노니아를 두고 communicatio 와 participatio로 아기자기 하게 번역을 했다. 그러나 이건 처음부터 번역의 선입관을 가지고 번역한 사례다)그러나 한국어는 그렇지가 못하다. 결정을 해야 한다. 코이노니아의 주어는 사람인가 아니면 그리스도인가?

나는 예언자로써 이 단어를 두고 괜히 시비를 거시는 얼굴 일그러진 신랑을 만나 그분의 심부름꾼이 되어 일해왔다. 솔직히 말해서 일그러진 신랑의 눈에는 피눈물이 서려 있고 마치 술에 취한듯 흥분해 계시다. 나를 향해 괜히 이유없는 심술을 부리시면서 속으로는 미안해 하시고 나를 위해 우신다. .... 나는 아무 불평하지 않는다. 그저 할 말이 없고 드릴 말씀이 없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