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aschal Koinonia and Exodus Dream 4 )


  고전 10:16의 코이노니아가 '우리의 참예'냐 아니면 '주님의 내어주심'이냐?


고전 10:16의 코이노니아가 '우리의 참예'냐 아니면 '주님의 내어주심'이냐?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찌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몸 같이 할찌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찌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고전 10:18 의 코이노니아에는 하나님의 '자신을 내어주심'이 없다

그러나 고전 10:16 의 코이노니아에는 하나님 어린양의 '자신을 내어주심이 있다.

이것이 차이점이다.

에베소서는 바울의 글이다.

이 에베소서의 말씀을 연구할 때에는 비유와 실체를 완전히 구별해야 한다.

겨자씨가 말씀이 아니듯이 겨자나무도 천국이 결단코 아니다.

부부의 비밀은 육에 속한 것이고 어린양 혼인잔치의 비밀은 영에 속한 것이다.

하나는 썩어 없어질 것이고 육에 속한 시기에만 적용되는 것이나

또 하나는 영에 속한 영원한 것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이 말씀은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셨느니라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대
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 가라사대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그러면 너희가 인자의 이전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볼것 같으면 어찌 하려느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요 6:53-63)



고전 10:18 의 코이노니아는 하나님의 '자신을 내어주심'이 없어도 가능하다.

그러나 고전 10:16 코이노니아는 하나님 어린양의 '자신을 내어주심'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고전 10:18 은 "제단의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예하는 자들이다."라는 뜻이고

고전 10:16 은 "우리가 축복하는 축복의 잔과 우리가 떼는 떡은 주님의 피와 살의 교제다."라는 뜻이다.

고전 10:16 의 코이노니아가 고전 10:18 의 코이노니아와 같은 뜻이 되려면 고전 10:16 의 주어는 잔과 떡이 아니라 마시고 먹는 행위가 되어야 한다.

잔과 떡은 내어주심이며 그리스도의 교제다.

우리의 먹고 마심은 내어주신 것에 참예함이다.

그리고 잔과 떡을 범하는 것은

주님의 내어주심을 범하는 것이며

주님의 살과 피를 범하는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고전 11:23-27)



주님의 '살과 피를 내어주심'이 없이는 이런 범죄는 성립이 안된다.

주님의 살과 피를 범하는 죄는 주님의 살과 피에 대한 범죄이지 주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것에 대한 범죄가 아니다.

이 범죄는 결코 가볍게 다루어지지 않는 큰 범죄로 성경은 가르친다.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찌니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고전 11:28-30)



주님의 몸을 분변치 못하는 것과 주님의 몸을 상징하는 것을 분변치 못하는 것은 다르다.

주님의 몸을 상징하는 것이라면 떡과 포도주가 아니라 주님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나 조각이나 십자고상의 주님의 모습이다.

떡과 포도주는 그런 것이 아니다.

주님의 살과 피가 임재하여 있는 지성소다. 그것을 범하는 것은 곧바로 주님의 살과 피를 범하는 행위로 이어진다.

주님의 몸을 상징하는 것을 범하였다고 해서 그런 엄청난 재앙이 내려지지는 않는다.

주님은 자비로우신 분이시다.

그러나 주님의 몸을 범하는 것은 주님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요 모독이며 범죄이다.

몰라서 그렇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고린도서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몰라서 그런 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없도록 잘 가르치는 것이 사도 바울의 일이었고 오늘날 사제들의 임무다.

그러나 몰라도 경건하게 잘 순종하는 것이 일반 개신교의 목사들과 성도들이다.

그런데 알지는 못하고 모르기는 하지만 경건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재앙을 만난다면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알든 모르든 그것이 문제가 아니고 경건과 불경건이 문제다.

업수이 여기고 함부로 행동하는 것.... 그것이 고린도 교회의 성만찬에 대한 태도였고

그것 때문에 엄청난 재앙을 만났다,

개신교 역사 500년 동안에 성만찬의 진리를 몰라서 성만찬을 모독하고 그것 때문에 재앙을 만난 일은 없었다.

몰라도 경건했기 때문이다.

성만찬 때문에 재앙을 만났다면 그것은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주의 식탁을 업수이 여기고 방자하게 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 이 홈페이지에서는 평범한 경건을 넘어서 그 넘치는 뜨거운 사랑에 열렬하게 응답하며

그 신비스러운 축복을 열심히 탐구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목표를 가지고 말씀을 연구하고 묵상하는 일에 힘쓰고자 하는 것이지

몰라도 경건하기만 하면 된다는 그런 소극적인 태도에 머물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심장에서 활활 타오르는 그 영원한 사랑 앞에서 멍청하게 있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주의 것이며, 주는 나의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것이며, 그리스도는 우리들의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모여야 한다.

그리스도의 뜨거운 사랑을 차지하고 그 불타오르는 영원한 사랑을 나누어주기 위하여.

우리들의 회개를 기뻐하시며 우리들의 죄악을 태워버리시는 권능의 손길 앞에서 우리는 겸손하여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