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ification (神化)


deification, or divinization, or in Greek, theosis: / 라틴어로는 deificatio(神化) 라고 한답니다.

The writings of the Church Fathers make numerous references to deification. One of the earliest references appears in the writings of St. Athanasius (d. 373 AD) who describes the purpose of God's incarnation as follows:
He, indeed, assumed humanity that we might become God.
성자 하나님이신 그분이 사람의 모양을 취하신 것은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되게 하려 하심이었다.
(On the Incarnation, Chapter 8, paragraph 54)

At this site similar statements are made by St. Gregory of Nazianzus.

In his translation of St. Cyril of Alexandria's Commentary of the Gospel of St. Luke, Georges Florovsky explains that through deification the total person is assimilated to the divine life and union with God. Such assimilation is believed to have become possible when Christ took on human flesh, thereby sanctifying it. For the Eastern Orthodox Church, Christ's incarnation is seen as closing the the gulf between spirit and matter.

Biblical passages which are regarded as supporting the doctrine of deification include: 2 Cor. 3:18; 2 Pet. 1:3-4; Phili. 3:20-21; Gal. 3:27; Eph. 4:24; John 3:5-6; Acts 17:28-29; 1 John 2:29; 1 John 4:15.

참고 성구 : 고후 3:18, 벧후 1:3-4, 빌립보 3:20-21, 갈 3:27, 엡 4:24, 요 3:5-6, 행 17:28-29, 요일 2:29, 요일 4:15
(참고 성구 선택 내용이 좀 흐릿하죠? 차라리 요6장을 읽읍시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저희가 묻되 그러면 우리로 보고 당신을 믿게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기록된바 하늘에서 저희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저희가 가로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내가 너희더러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자기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라 하시므로 유대인들이 예수께 대하여 수군거려 가로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제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로서 내려왔다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서로 수군거리지 말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이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가로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제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요 6:26-58)


성육신(成肉身, 인간의 육신을 입으심, incarnation)신화(神化, 인간을 하나님과 비슷하게 되게 하심, deification)와 관계가 있다면.... 즉 성육신의 목적이 신화라면은요..... 성육신(成肉身)과 신화(神化) 사이에 있는 성만찬(聖晩餐)은 무엇이죠? 성만찬(聖晩餐)의 목적은 무엇이죠? 성육신(成肉身)이 없었다면 십자가 속죄의 죽음도 세례도 성만찬도 없었겠죠?

성만찬(聖晩餐)과 신화(神化) 사이에는 무슨 관계가 있나요? 사람의 가르침이 아닌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른다면 말입니다.


[묵상 주제 1] : 성육신(成肉身)과 신화(神化) , 성육신(成肉身)과 성만찬(聖晩餐) , 성만찬(聖晩餐)과 신화(神化) , 성육신(成肉身)과 성만찬(聖晩餐)과 신화(神化)

[묵상 주제 2] : 신화(神化)의 핵심 중에 하나가 성만찬(聖晩餐)이 아닐까요?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요한복음 6장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말입니다.

[묵상 주제 3] : 주와 합하는 자는 한영이라.(고전 6:17) , 신랑과 합한 신부는 신랑과 같게 된다. 신랑과 합한 신부는 신랑과 한 자리에 서게 된다. 신랑과 합한 신부는 신랑을 닮아가게 된다. 신랑과 신부 이야기는 그저 비유일 뿐이지 교회가 그리스도의 신부는 아니지요. 인간적인 의미의 신부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닮은 하나님의 백성들이라고나 할까요? 왕과 백성은 신랑과 신부로 묘사하는 것이 고전적인 용법이지요. 이처럼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 혹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은 신랑과 신부로 비유되는 것입니다. 서로 일체감을 가지는 공동체가 되는 것이지요.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아닐까요? 신랑과 신부의 합함은 주님과 교회의 합함에 대한 비유일 뿐 같은 것은 아니지요. 전자의 합함은 이 땅의 것이고 후자의 합함은 하늘의 것입니다. 겨자씨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고 겨자나무가 천국이 아니듯이 이 땅의 합함은 하늘의 합함과 전혀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성만찬은 하늘의 합함입니다. 이 거룩한 은혜의 실체를 알기 전에는 예배 속에 감추인 신비스러운 축복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는 무조건 믿는 믿음이 있잖아요? 더구나 성경이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것을 증거하고 있다면 더욱 그렇지요. 예수님은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리라."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일점일획도 더하거나 빼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이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성만찬은 나와 합하는 것이며, 우리가 서로 안에 거하는 것이며, 우리가 한영이 되는 것이며, 이 땅의 백성이 하늘의 왕과 결합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배를 어린 양의 혼인잔치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왕의 혼인잔치. 복음서 어디에선가 듣던 말씀이 아닌가요? 요한복음 6장을 읽을 때에는 마귀가 심하게 흔들어댑니다. 생명의 핵심으로 들어가려는 것을 막으려고 그러는 것이지요. 이기는 자는 바로 이 마귀의 훼방을 이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감추었던 만나가 보일 것입니다. 한국 개신교계에 가리워진 진리 말입니다. 이 감추인 진리를 밝히 드러내는 것이 주님의 간절한 새 천년 소망이고 제2차 종교개혁의 깃발을 올리는 것입니다. 저는 '이기는 자' 교회가 이 깃발을 올렸으면 합니다. 우리는 요한복은 6장에서 분명히 봅니다. 성만찬의 진리에 대해 예수님과 사람들이 다투는 것을. 우리들의 양쪽 귀는 예수님의 말씀과 사람들의 말을 향해 열려 있었습니다. 이제 한쪽 귀는 닫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택일을 요구하시기 때문입니다.


( 유대인들☞   ☜예수님†과 성령님 )
( 쯔빙글리☞   ☜마틴 루터 )



요한복음 6장 다시 읽기 운동


( 종교개혁의 마무리, 요한복음 6장 )
( 예수님과 쯔빙글리 사이에서 )